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봉평은 골이 깊은 산간 오지였다. 백석 시인의 마가리와 같은 봉평에서 나는 나고 자랐다.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냇가에서 불거지들을 쫒다 어두워져서야 집에 돌아왔고, 밭일을 마친 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또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와 연기 자욱한 부엌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구워 먹기도 했다. 서리가 내리면 앞산에서 소갈비를 긁었고, 먼산 나무를 리어카로 실어 날랐다. 가마솥에 엿을 고거나 해가 지도록 맷돌에 불은 콩을 갈았고, 화로에 김치와 밥과 문지방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볶아 먹으며 겨울을 났다. 태기산 너머로 겨울 해는 일찍 졌고, 흥정산의 눈은 쉽게 녹지 않았다.
어린 시절은 궁핍하고 고단하고 추운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나의 근원이 눈과 바람과 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가리로 통하는 깊고 깊은 산, 산과 함께하는 그 시절 봉평 사람들도 그러했으리라.
어린 시절을 쫓아 평창과 봉평을 서성거린 스무 점의 사진을 부끄럽지만 내보인다. 꺼끌꺼끌한 강냉이 밥 같은, 노모의 손등 같은 산협 풍경 한 그릇 잘 씹어 자시고 가셨으면 좋겠다.
산협의 기억 #1,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2,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8
산협의 기억 #3,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4,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5,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6,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7,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8,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9,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10,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8
산협의 기억 #11,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10
산협의 기억 #12, Daegwally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13
산협의 기억 #13,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8
산협의 기억 #14,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8
산협의 기억 #15,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16,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13
산협의 기억 #17,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8
산협의 기억 #18, Jinbu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19,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산협의 기억 #20, Bongypeong Pycheongchang, Gangwondo, South Korea, 2009
*작가노트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봉평은 골이 깊은 산간 오지였다. 백석 시인의 마가리와 같은 봉평에서 나는 나고 자랐다.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냇가에서 불거지들을 쫒다 어두워져서야 집에 돌아왔고, 밭일을 마친 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또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와 연기 자욱한 부엌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구워 먹기도 했다. 서리가 내리면 앞산에서 소갈비를 긁었고, 먼산 나무를 리어카로 실어 날랐다. 가마솥에 엿을 고거나 해가 지도록 맷돌에 불은 콩을 갈았고, 화로에 김치와 밥과 문지방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볶아 먹으며 겨울을 났다. 태기산 너머로 겨울 해는 일찍 졌고, 흥정산의 눈은 쉽게 녹지 않았다.
어린 시절은 궁핍하고 고단하고 추운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나의 근원이 눈과 바람과 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가리로 통하는 깊고 깊은 산, 산과 함께하는 그 시절 봉평 사람들도 그러했으리라.
어린 시절을 쫓아 평창과 봉평을 서성거린 스무 점의 사진을 부끄럽지만 내보인다. 꺼끌꺼끌한 강냉이 밥 같은, 노모의 손등 같은 산협 풍경 한 그릇 잘 씹어 자시고 가셨으면 좋겠다.
*전시이력
- 2016. 8. 15 ~ 10.30, 2016. 평창효석문화제 기획전 "사진, 시 몇 줄" 산협의 기억, 이효석문학관, 평창
- 2017. 3. 8 ~ 19, "사진, 시 몇 줄" 산협의 기억, 강릉시립미술관, 강릉